일상/일

2015년 7월 -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Munthm 2022. 8.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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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중국 공장과의 관계 정리를 마친 후, 이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 했다.

알고보니 P직원은 지난 6개월 여간 출근하면서 했던 일이 운전 말고는 거의 없었고 사실상 불 필요 전력이었다.

게다가 H이사 혼자서 영업을 했었고 사장님은 수입만을 담당했었다. 즉, H이사 거래처 외에는 현재 거래처가 전무한 상태.

 

그래서 이대로 그냥 회사 문을 닫을 것인지에 대해 심도있는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회사를 운영하려면 자본금이 필요한데 자본금이랄 것도 특별히 없는 상태였다. I회사와 공장간의 채무정리만 끝났을 뿐 지난 몇 년간의 거래를 통한 수수료는 못 받은 상태였으니까. (심지어 아직까지도 지급을 못받았다.)

F사의 신용도는 매우 낮아 은행에서는 외화 여신 거래 (LC usance)를 그 동안 해주고 있지 않았는데, 불행 중 다행인건지, 아니면 희망고문이었던 것인지, 신한은행 한 지점에서 신용거래를 해보자는 연락이 마침 왔다. 어쩌면 문을 닫는 편이 나았을 상황에 어찌됐든 다시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LC 라곤 군대 있을때 미생에서 들어본 게 전부였는데)

 

당장 거래처는 없었고, 사장님은 예전에 알던 또는 업계에서 크다고 하는 업체, 과거 사장님의 직원이 차린 업체에 가서 새롭게 거래를 터볼 심산이라고 하셨다. 나는 2015년 4월 전역하고 3일만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긴 했으나 당시 까지는 운전 경험이 없어, 급하게 운전 연수를 받고 있었고, 운전밖에 할 줄 모르던 직원 P가 운전을 하고 우리는 여주, 남양주, 인천 등을 쏘다니며 거래처 발굴에 매진하기로 했다. 

 

1. 예전에 알던 업체 Y

  건축자재는 무겁고 다루기가 힘들어 운송이 어렵고 비싸다. 하지만 제품 특성상 바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예전에는 재고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해놓느냐가 관건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2000년대에 대대적인 건축자재 파동이 있었고 이 시기에 재고를 안정적으로 수급했던 업체들이 돈을 벌었다. 또한 그 많은 재고를 쌓아놓기 위해서는 땅을 확보해놓고 있어야 했으므로 창고를 미리미리 구매했던 업체들은 그 다음 레벨로 성장을 했다. 

 

구글 이미지

  예전에 알던 업체 Y와 크다고 잘 알려진 두번째 소개할 업체 U는 위 설명의 대표 케이스인 업체들로 모두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설립되어 대략 왼쪽 같은 점포 형태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같은 천평, 오천평 단위의 창고 스케일로 커온 회사들이었다.

 

다행히 사장님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Y사는 많지 않은 수량이지만 한 번 시작해보자며 가장 자주 쓰이는 품목에 대해 (그래서 거의 마진이 없이) 오더를 받을 수 있었다. 

 

2. 크다고 알려진 업체 U

이 업체는 거래를 해본 적은 없으나 사장님 말로는 아마도 자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거래가 잘 성사될 것이므로 기대를 해도 좋다는 말과 함께 방문했다. 안타깝게도 해당업체 사장은 우리 사장님을 한 눈에 알아보진 못했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아~ 그 분이셨구나 정도로 기억을 하셨다. 다만 2세 경영체제로 돌입 중이었으므로 당시 과장이었던 아들과도 대화를 나누라고 하였는데, 상대하기에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새로 구축했다던 약 만 평에 이르는 물류센터는 현재 땅 가치만 250억에 달한다고 하니 이제 와서는 이해가 가는 모습이다.

어쨌든 이 업체는 우리가 타겟으로 하던 품목에 대해서는 조건부 오더 (실제 제품 디자인을 확인한 후에)와 함께 자주 쓰이는 품목에 대해서도 일부 오더를 (역시나 마진이 거의 없었다.) 주었으며, 나에게 어떤 강렬한 느낌을 심어줬던 업체였다.

 

3. 사장님 직원이었던 업체 GI 

이 업체는 사장님의 예전 직원이었던 사람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우릴 맞이해준 업체였다. 이 업체에서는 우리가 타겟으로 하는 품목에 대해서 역시나 조건부 오더를 주었고, 자주 쓰이는 품목에 대해서도 일부 오더를 줬다. (자주 쓰이는 품목의 경우 많이 오더할수록 단가가 내려가므로 거의 '발가벗고' 줘야 한다는 사장님의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사회생활은 음악을 하면서 해봤었지만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와 생존논리 (어쨌든 무역, 건축자재는 물건을 파는 곳이다)에 당황도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7월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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