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출장/2016

Sep 25- Oct 12 이탈리아 출장 / 유럽 여행 - (3) 볼로냐 출장/여행

Munthm 2017. 12. 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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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의 좁은 골목 골목에는 식당들이 외부에 테이블을 비치해뒀습니다.

불편함을 느끼기 보다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모습입니다.


아직 시간이 6시 정도여서 꽉 들어차지 않았는데 7시가 넘어가면서 부터는 꽉 들어차서 굉장히 훈훈한 분위기가 됩니다.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맛있는 음식과 술을 곁들입니다.

여유와 사랑이 넘치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야근때문에, 회식때문에 친구들, 가족들, 연인들 만나기도 힘든 한국의 평일과는 매우 달라보였어요.

직장 동료들끼리 모였다고 하더라도 친한 동료들끼리 라이브 재즈가 나오는 식당에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놀거나 하더라고요.


색감을 담아낼 수 없음에 슬픕니다..


뭐..? 내 사이즈가 없다고..??


볼로냐는 과거 굉장히 컸던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에밀리아로마냐 주의 주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요.


1088년 설립된 볼로냐 대학이 세계 최초의 대학이었으니, 그 당시 볼로냐의 위상은 엄청났던 것이죠.


게 누구 없느냐


마조레 광장은 한창 복원 공사 등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심지어 2017년에 갔을 때도 ㅠ)


이때는 몰랐는데 2017년에 이탈리아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돌아다니다가 저 안으로 들어갔는데, 귓속말의 벽? 이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돔 형태로 되어 있다보니 한 쪽 구석에서 말을 하면 소리의 울림이 돔을 타고 대각선 구석에 바로 가서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아마도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몰래 만나던 연인들이나 반란을 꾸미던 전사들이 몰래 대화를 주고 받을 때 쓰지 않았겠냐는 유머도 있다네요 ㅋㅋ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탑입니다.


볼로냐의 상징이기도 한 탑인데요.

중세시대 각 가문들이 자신의 지위를 뽐내고자 저렇게 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그 개수가 수백 (?) 개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 소실되거나 등등 하면서 지금은 수 십 개 정도만 남아있는데, 가장 큰 두 탑이 (사진으론 잘 안보이네요) 저렇게 모여 있어, 두개의 탑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실제로 올라가보진 않았는데, 이탈리아 친구도 볼로냐에서 대학도 다녔지만 정작 저기는 안 올라가봤다고 하네요.. ㅋㅋㅋㅋ


크.. 애플스토어는 언제나 제게 감동을 줍니다.

'쇼룸' 의 가장 트렌디한 의미를 잘 보여주는데요,

볼로냐에서는 고대 도시에 잘 녹아든 애플스토어를 잘 표현해냈네요.


(잠깐, 인구 40만의 볼로냐에도 애플스토어가 있는데, 인구 40만 이상의 구가 23개가 있는 서울시에는 애플스토어가 왜 하나도 없는거야..??)


우리가 대림 오토바이 타듯이 베스파를 타는 축복받은 나라. ㅋㅋㅋ

사실은 골목 골목 마다 너무 다 머물러 보고 싶어서 찍었던 사진들입니다.


건물들이 아주 이쁩니다.


회랑으로 쭉 이어진 건물들..

볼로냐를 걸어다니면 차를 피할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쓰레기통은 회랑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행로에 걷다보면 좁디 좁은 보행로에 그 마저도 수 많은 쓰레기통들과 각종 입간판들 때문에 사실상 웬만한 거리에서는 보행로보다는 그냥 차도로 다니는게 마음편할 때가 많아요.. 사람에 치이고 자전거에 치이고 하기 때문에..

근데 넓찍한 회랑 밑의 보행로에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정말 걷기 좋습니다.




점점 골목에 가득차는 볼로냐 시민들


마조레 광장의 해지는 모습


너무 그리운 풍경입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 입니다.


볼로냐의 성인 산페트로니오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인데요, 1390년 로마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건설하기 시작하였는데 원래는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보다 더 큰 규모로 건설하려고 하였으나 후에 규모를 축소하였고 결국은 1659년 미완성인 채로 공사가 종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1505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에게 고대 로마의 것에 필적할 만한 자기 묘를 세우고자 했고, 미켈란젤로는 40채 이상의 조각상을 포함하여 웅장한 건축물을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고, 8개월 이상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리석을 캐고자 산 속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12월, 채석장에서 로마로 돌아온 미켈란젤로가 조각 제작에 착수했으나, 교황청의 건축 기사 브라만테의 훼방으로 바티칸 궁전으로 쫓겨나고 맙니다.. 


다시, 1506년 교황과 화해하고 이번에는 볼로냐에 커다란 동상을 세우는 일에 착수하였고 1508년 2월 산 페트로니오 성당 교회 정면에 세웠는데요, 불행히도 1511년 12월 율리우스의 적 벤테보리오 당에 의해 파괴되었고, 심지어 그 파편 조각들은 대포를 만들기 위해 팔려 나가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고 하네요.. 어쨌든 미켈란젤로는 이 볼로냐 동상 이후에 1508년 5월 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둥근 천장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무려 4년에 걸친 작업 끝에 너무나도 유명한 대작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게 되죠. 


죄송합니다. 문을 너무 찍죠


제가 좋아하던 식당!

즉석에서 만드는 생 파스타, 또르뗄리니/또르뗄로니 가 일품인 식당이었습니다.


조명도 이쁘군요.





또 문..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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